어려서 공부를 늦게 시작한 덕에 공부에 대한 집중력 보다는 그 주변의 것들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1이 되고 처음 독서실에 가면서 제일 신경썼던 것이 필체였던 것 같다. 읽고 외는 게 싫으니 쓰는 거라도 흡족하게 했으면 해서였다. 글씨 쓰는 것에 노력을 하다 보니 문구류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요즘도 가끔 글씨가 잘 안 써지면 맘이 불편하다. 그런 탓에 어떤 펜을 쓸 때, 어떤 책상에서 쓸 때, 어떤 자세에서 쓸 때 글씨가 잘 써지는지에 대한 원리를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게 됐다. 대체로 딱딱한 바닥에 종이 한 장만 대고 쓰면 잘 써지지 않고 볼펜 보다는 잉크펜이 잘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글씨를 쓰는 팔꿈치가 공중에 떠 있을 때다. 습관이라 그런가 나는 팔꿈치가 책상에 닿아 안정감을 가져야 글씨가 잘 써진다.

 취직을 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게 팔꿈치를 대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팔꿈치가 소속이고 내가 글씨를 쓰는 손이라면 소속이 주는 안정감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소속과 나를 과하게 동일시하면서 본질을 놓치거나 배타적이 되지 않는다면 소속이라는 건 굉장한 안정감을 준다. 취업을 준비하며 소속에 대한 갈망이 생겼기 때문에 지금 소속에 대한 만족을 과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긴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다를지언정 순기능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25살 이후론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이면 샤워를 하며 내가 상처를 주거나 실수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오늘은 이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런 다짐은 삶 속에서 무산 되었던 적이 많다. 여기서 왜인가를 따라 올라가면 결핍과 상처가 있었던 탓이지 싶다. 내가 누굴 배려하거나 남의 조그만 잘못을 참을만큼의 여유가 없을 때, 샤워하며 한 다짐은 안 하니만 못한 것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때에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 지난 4년이었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안정감과 소속감이 기쁘다. 동시에 자책으로 이어지는 잘못의 연속이었던 시간의 나의 깜냥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다. 주어진 상황에서도 내 스스로 여유를 만들어내어 따뜻하고 진중한 사람이 되고 싶던 목표를 언제즘 이룰 수 있을는지에 대한 막막함이 아직 남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팔꿈치를 붙이지 않아도 글씨를 잘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데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팔꿈치를 책상에 대면서 글씨를 쓸 때 느껴지는 안정감을 어딘가에 소속됨으로써 느끼는 것 같아 좋다.

 항상 더 나은 사람이고자 살아야겠다. 죽고나면 다 똑같은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살았던 동안에 더 나아지고자 몸부림치고 노력했던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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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미사를 다니는 중이다. 물론, 매일 가려던 다짐은 항상 눈을 뜨며 마주하는 7:20 이라는 시계를 보며 좌절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벽에 일어나 취업을 하게 해주십사 기도를 드리러 간사한 마음으로 가는 것 같아 새벽미사를 가면서도 죄스럽기도 하다. 요즈음 새벽미사에는 첫영성체 교리를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온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그 아이들을 위해 해주시니 나에게도 딱 눈높이에 맞는 말씀을 듣는 것 같다 좋다. 

 오늘의 강론을 아이들에게 하시는 걸 듣는데 무슨 질문을 하실 때마다 '아니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10살 정도의 녀석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지겨운 미사를 드리려니 뿔이 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고 보니 나의 주일학교 선생님 7년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주일학교 교사 생활의 첫 3년의 나는 미사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미워했다. '미사 시간에는 조용해야 한다'는 당위를 강요했고 그래도 안 될 때에는 나무라려 했다. 그리고 조용히 시키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무능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시끄럽던 아이들도 고등학생만 되면 점잖게 미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는 애즉에 그 중학생들을 40분씩이나 내 원한대로 통제한다는 것이 허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 나이엔 무슨 말을 한들 그들에겐 이해되고 행동을 바꿀만한 논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몇년 전부터 나의 신념인 것처럼 굳어진 생각이 한 가지 있는데 '사람은 엄청난 크기의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정말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삶의 과정에서 모두 예전에 들었던 '미사시간엔 조용히 해야지' 같은 당위적 논리가 이해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던지게 만드는 경험을 하기 마련인 듯하다. 결대로, 흐르듯이 살게 두면 언젠가는 깨달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대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메시지를 구태여 머릿속에 입력하고 원래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시간을 굳이 건너뛸 시도를 할 필요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순간에 충실해야 깨달음의 기회도 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크게 느낀다. 그렇지만 선배의 충고를 '꼰대의 지적질'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젠 조금씩 알 것도 같다. 그 충고에 휘둘리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충고를 부정하는 것도 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업전선에 있으면서, 대학생활이 마치 술에 취했던 것처럼 정신 없는 상태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굳이 시절을 돌이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이젠 들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런 방황(?)들로 만들어진 사람이고, 과거를 돌린다는 것도 애즉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고민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잘못은 잘못으로 철저히 뉘우치면 된다. 앞으로는 잘못을 저지르고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들고서 나를 깎아내거나 미워하고 부정하는 일은 멈출 수 있을만큼은 큰 것 같다.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침 공기를 마시며 묘한 삶의 자신감을 얻었다. 항상 조심하되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물 흐르듯이 내 삶의 결대로.

마무리는 Dwight quotes는 아니지만 FALSE meme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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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6, 2016

카테고리 없음 2018. 1. 11. 23:33

무한도전을 보다가 엄마한테 이런 말을 건넸다. 
"엄마 쟤넨 젝스키스 모르겠다. 은퇴하고 태어난 애들이잖아."

아이들의 표정도 이해가 됐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누군가 잊혀진 계절을 부른 이용의 무대를 보여줬다면 노래는 어렴풋이 알았던들 그의 얼굴마저 알아보진 못했을 테니까. 


성당에서 교사들끼리 이야기하던 중 20학번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10학번이다. 학번이 1로 시작할 수도 있냐던 선배들의 말은 그대로 내 입에서 학번이 2로도 시작할 수 있냐는 말이 되어 나온다. 


대치역 앞 스타벅스에서 밖을 보는데 '플러스'라고 쓰여진 슬리퍼를 신은 아이들 무리를 발견했다. 내가 다니던 플러스 독서실 슬리퍼다. 푹신한 슬리퍼의 발등엔 화이트로 거칠게 '플러스' 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도 똑같구나. 


이제서 조금씩 다른 세대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젝스키스를 모르는 아이들은 이용을 몰랐던 그 예전의 나고 2로 시작하는 학번을 가질 사람들도 학번이 1로 시작할 수도 있냐는 소리를 듣던 나요, 플러스 독서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아이들도 그 옛날 독서실 다니던 나다. 다르게 보면 매봉역에서 벌개진 얼굴로 서로가 탈 택시를 잡아주며 귀가하시는 아저씨들도 나일테고 자식의 손을 잡고 빵을 사러 오시는 아저씨도 나일 테고 말없이 양재천을 걸으시는 노부부도 나일테다. 


사람들은 다 자신이 태어난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산다. 어느 시절에 어렸건, 젊었건, 나이 먹어가건 간에 다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어처구니 없게도 최근에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전엔 다른 세대를 게임 NPC처럼 여겼었다. 이제사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건 나의 어리석음 탓이다...


존중은 그래서 해야 하는 것이구나. 닳고 닳도록 들은 그 흔해빠진 단어의 무게를 처음 제대로 느끼고 있다. 하하 내일이 시험이라 그런가보다. 막학기는 마치 구름위를 걷는 듯하다.


Image may contain: people standing, sky and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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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쩍 생각이 많다. 그 바닥까지 가보면 해야 할 일이 하기 싫어 생긴 스트레스의 응어리 정도이지만 몇 달 째 이러니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하루에도 몇 번 생각이 미국에 갔다가 2014년의 나에게로 갔다가 하는 식이지만 그래도 이 걱정 그래프의 x축을 축소해봤을 때 전체적으론 조금 더 차분해졌다. 스물아홉의 관록인 걸까. 


 스페인어 회화 수업을 듣고 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는 스페인어 까먹는 게 아쉬워서다. 선생님은 마드리드에서 온 25살 여자분이고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서 연희동에 산다고 했다. 한국말을 매우 잘하고 억양을 매우 잘 배운 탓에 가끔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보통 선생님은 수업에서 한국 사회와 관련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인들은 왜 이리 수동적인가', '한국의 아이들은 왜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가' 등의 아주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주를 이룬다. 학생의 입장에서 매우 고맙다. 피상적인 말을 외국어로 하려면 머리가 돌아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정도 해야 하니 접속법에 관한 컨져게이션이 머리를 뒤덮기도 하니 연습이 되는 것이 느껴진다. 이게 선생님이 심각한 주제들만을 매 시간 꺼내드는 이유이리라.


 반엔 나를 포함 7명의 수강생이 있는데 한 명은 곧 남미로 인턴을 떠나는 사람, 스페인에 살다 오신 유학생, 나, 페루에 살았고 페루 여자친구가 있는 분 등 다양하다. 우리는 이 한국 사회에 대한 대화의 끝에 이렇게 말했다. "Hay monton de razones por las que los coreanos quieren ir fuera de Corea"(한국인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너무 많아요). 


 나는 한국이 좋다. 내가 태어난 땅이고 내 친구, 가족들이 모두 있는 곳이며 내 생각을 제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나라이면서 나를 형성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덮고라도 더나고 싶은 이유도 있다. 굳이 이 사회에 거리를 두며 "한국은 틀렸으니 옳은 서구에 속하겠어"라는 마음에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아니다.


 나쁜 배우자와 헤어지지 못하고 같이 사는 마음 같은 것이랄까. 흔히 말하는 정 때문도 있다. 그런데 보다 더 큰 걱정은 있다. '외국에서 살 준비가 되어 있을까?'하는 것 말이다. 여기서 아직도 현실에 부딪히려고만 할 뿐 철이 들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도 무언가에 기대려 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내 난대로 살겠다고 말만 하고 다니면서 정작 기대어 나를 커보이게 만들 기둥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극단적 반대로 돌아가서 무소유가 답이며 귀농이 옳은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JD를 만나고 최종까지 갔지만 조그만 기업에 상대적으로 작은 연봉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회사를 다닐 나를 볼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가 제일 그 면접을 망치게 했다. 내가 망친 거다. 내가. 인종적으로 다수가 아닌 사회 속에서 살며 자유를 느꼈던 것이든 그 사회가 기실 그렇게 자유로워서 그랬던 것이든 스페인에 살던 때가 그리워졌다. 


 미국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유학생 친구가 '미국이 완전한 사회는 아니야'라고 했을 때 내가 말하는 메시지가 보통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은 것 같아 나름 생각을 더 해보기도 했다.


 어디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본인 선택이다. 본인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데서 더 행복하게 사는 건 재단 되어야 할 무언가가 아니고 respect 받아야 할 내 삶과 개별적인 선택이란 결론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모든 걸 다 의심하고 내가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그 무언가를 파헤쳐 볼 때 실은 내가 공허해질 무언가만 좇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게 된다. 마치 술이 덜 깬 아침에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한 무언가의 알람을 기다리는 나를 깨닫게 되는 그 숨고 싶은 창피함 같은 공허한 것들 말이다.


 맥주나 한 캔 사와 마시고 자야겠다. 어디서 살 것인지는 감성적으로 빠질 일이 아니니 내가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만큼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서 할 일이니 제정신에 할 일이고 지금은 맥주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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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에 간 친구와 대화를 하며 3년 전 호주 여행 사진을 다시 봤다. 찬찬히 사진을 넘겨보며 든 생각은 '과연 그 3년 동안 나는 발전했는가'였다. 발전이라는 말 안에 많은 것을 넣어 생각했다. 거기엔 타인에 대한 배려, 능력의 발전을 위한 일상 속 의식적 노력 같은 것들이 있다. 30이라는 어려서 생각하기에 모든 걸 다 이루었을 것 같은 나이에 거의 이르러 돌아보니 지난 3년이 조금은 허망하게도 느껴졌던 까닭에 그 3년에 뭘 했는가를 더 뼈아프게 돌아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를 하자면 두 측면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첫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참 사람 대할 줄 모른다. 내 하고 싶은 말에 대화를 빠트리는 경우가 다반사고 내 관심 없는 대화엔 정말 심각하게 집중을 할 줄 모른다. 살갑게 들어주거나 동의해주기 보단 반박하거나 되도 않는 훈수나 충고를 하려든다. 지난 3년, 이 내가 돌아보기 싫어하는 내 이 모습들이 사진에 얽힌 기억들을 돌아보며 한 번에 머릿속에서 되살아나 약간 힘들었다. 그 대상들이 점점 바빠지며 물리적으로도 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사진이 주는 묘한 향수와 우울감이 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고 그 누구를 내가 이 이유로 질리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죄책감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둘째, 내 자신의 능력에 있어서

 친구들이 취업이다, 시험이다 바쁘게 노력할 때 나도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으로도 발간 되었던 온라인 매거진의 필진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팟캐스트도 제작해 보았고 스페인으로 석사 유학도 다녀왔다. 지난 3년간의 행위를 이렇게 쓰면 저렇게 되지만 그 내용이 전부 알찬 것이었는가, 그 동안에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며 살았는가, 목표를 명확히 하고 내 능력의 발전을 위해 어떤 주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왔는가를 돌아보니 부끄러움이 아니라 허무함이 느껴졌다. 당시엔 의식하지 못 했지만 당시의 나를 돌아보니 100%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의 시선에 대책 없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즐겼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가슴 벅차게 했던 과거의 나를 부정하게 되는 것은 완전히 유쾌한 일은 아님에 틀림 없다. 그래도 좋게 보자면, 그 당시의 내게서 잘못이 보인다는 것이 내 시야가 커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틀림 없는 일이다. 우울감으로 빠지기 전에, 이성적으로 보고 길게 보고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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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tormento a domicilio


El Madrid lleva 18 partidos seguidos sin perder fuera de casa


El Madrid vive mejor del Santiago Bernabéu. En su estadio, habitual granero[1] de victorias históricamente, ha sufrido más que en sus desplazamientos. De hecho, no pierde un partido furera de casa desde el 16 de abril, en Wolfsburgo. En Liga toca remontarse[2] a hace más de un año, a la visita a El Madrigal(Estadio de el Villarreal) del pasado 13 de diciembre de 2015. Entonces, el Villarreal se impuso[3] al equipo entonces[4] dirigido por Benitez. Desde aquel encuentro, el conjunto blanco no pierde fuera de casa en La Liga.


 El 2016 ha sido un año rotundo[5] de éxitos para el Madrid. Los ha construido preferentemente lejos del Bernabéu. La dinámica le ha llevado a comportarse[6] mejor como visitante que como local. Y la tendencia se ha agudizado[7] en esta campaña[8]. De hecho, en este curso sus mayores apuros[9] llegaron en su estadio. Allí consiguió victorias por la mínima an te el Celta, Sporting, y Deportivo y empató ante el Eibar, Villarreal y Borussia.


 Sin embargo, lejos del Bernabéu el Madrid ha encadenado[10] 18 partiods sin perder. El 2-0 de Wolfsburgo en los cuartos de final de la última Champions fue su última derrota[11]. El tropiezo[12] no pasó a mayores por la remontada[13] de dos semanas después.


 Se trata de la tercera mejor racha[14] como visitante en la historia del club. Sólo la superan la de 19 partidos invicto[15] en la temporada 96-97 y la de 21 que estuvo sin caer en la 2011-2012 con Murinho. Fue la última Liga que logró[16] el equipo blanco. Entonces también se fabricó[17] el título siendo un tormento a domicilio.



[1] Habitual granero de victorias: 승점

[2] Remontarse: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3] Imponerse: 승리하다

[4] Entonces: 그리하여, 당시에

[5] Rotundo: 단호한, 철저한

[6] Comportarse: 처신하다                     comportar: 수반하다, 가져오다

[7] Agudizar: 예리하게 하다, 뾰족하게 만들다

[8] Campaña: 필드

[9] Apuro: 곤궁, 곤란, 어려움

[10] Encadenar: 속박하다, 연관시키다

[11] Derrota: 패배

[12] Tropiezo: 장애, 실수

[13] remontad@: 극복

[14] Racha: 돌풍, 줄기

[15] Invicto: 불패의

[16] Lograr: 달성하다, 성취하다

[17] Fabricarse: 만들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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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들은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인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흔치 않은 일들은 대부분 태어나 처음 하는 일 들이 많다. 요 근래에 들어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본 것 같다. 좋은 지 나쁜 지는 판단하지 않겠다.



 정말 솔직히 고백하건대는 오만했다. 돌이켜 볼 때에 그 보다 오만할 수 없다. 스스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스물 다섯에 말이다. 그리고선 그 이유 없는 판단에 확신을 엄청나게 실었다. 그래서인가 그 때 했던 판단은 기쁘고 설레기만 했다. 특히나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일일 수록 더 그랬다. 완성된 내가 온전히 마음을 쏟는 일이라면 평생을 두고서라도 옳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구가 그랬고 어느 한 사람이 그랬다. 그 판단이 틀렸는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그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얼토당토 않게 내가 확신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확신 말이다. (지금에도 절대 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당시 나를 원망할 뿐이다. 조금 더 차분했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내가 온전하다고 믿어 버린 순간부터 내가 느낀 감정은 강한 만큼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온전한 내가 그렇게까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놓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기에 더 그러했다. 그 때에 느낀 감정이 모두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 때 느낀 감정의 크기는 살면서 가장 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거기에 매몰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줍잖게 당시에 스스로를 믿었던 만큼 말이다. 그래서 빠져 나올 수 없이 그 감정에 흠뻑 젖었다. 감정이 과장되었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무튼, 그래서 그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었노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후회가 되는 것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오만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만큼 그에게 내 멋대로 행동했다. 그 누구에게 보다도 더 멋대로였다. 잘못된 자의식 때문에, 내가 고작 스물 다섯에 완성되었다는 되지도 않는 자의식 때문에 가진 확신이 모든 걸 그르쳤다. 이성의 제약 없이 모든 감정을 다 배설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긴 존재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이제 와서 변명하기도 부끄럽다. '스스로 완성되었다'고 느꼈던 그 당시의 나의 애티튜드는 딱 그 정도였다. 이제 와서 보기엔 그저 덜 떨어진 미저리였을 뿐이다. 병신.



잃고, 아니 내가 스스로 멀어지게 하고서 많이 울었다. 겨우내 매일 생각하며 슬퍼하고 종종 울었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둘째고 그만큼의 생각이 드는 사람을 놓쳤다는 생각에 슬픔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성장의 기회리라 자위하며 버텨 왔다. 지금의 생각에도 그건 자위다. 많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무언가 내 생각을 정리하겠노라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홀로 생각하니 안쓰럽다. 근데 다른 면으로 보기에 많이 컸다 싶기도 하다.



앞으로 스스로를 보기에 잘못 되었다 싶은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근래에 깨달은 것은 절대로 죽기 전까지 완성되는 자아라는 것은 없으며 절대로 후회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확실한 결단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기분은 아마 살면서 더 느껴보지 못 할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 보다 더 큰 것을 희망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만큼의 감정을 주는 사람을 만나 보았단 사실은 내게 좋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솔직하게, 당위 보다는 내 좋은 일을 좇으며 살으려 하기에 그 감정이 더 아쉽고 그립다. 그 사람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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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카테고리 없음 2015. 6. 9. 08:34

일요일의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밴드미사에 드럼 담당을 중1학생이 처음으로 맡았다. 성전 앞에서 연습을 하는데 그 학생과 꼭닮은 분이 오셔서 아이에게 윙크로 인사를 하셨고 아이는 스틱을 들어올림으로써 화답했다. 웃으시며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님의 눈빛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대견함과 사랑 그리고 걱정까지 말이다. 아버지의 눈빛에 담긴 세월을 혼자 앉아 추적해보았다.

아버님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을 결심하셨을 것이다. 다투기도, 헤어지기도 하며 사랑을 더 돈독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자라며 전적으로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했을 것이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며 조금씩이나마 성장함을 부모님께 보였을 것이다.

그랬던 아이가 사람들이 수 백 명 모인 미사에서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시니 당신 아이가 진짜 크고 있음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신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 표정은 조그만 핏덩이에서 하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모두 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을 것이다.

그 기쁨의 크기만큼을 반대로 돌려 보니 너무나도 섬뜩했다. 그리고는 생각이 저절로 작년 봄으로 향했다. 팽목항에는 드럼치는 학생의 아버님의 기쁨을 겪으며 살아 오신 분이 수백분이었을 것이다. 그 기쁨을 준 존재가 죽어감을, 눈 앞에서 내 힘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보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큰 슬픔일까.

그 분들께서 느끼셨을 무력함과 비참함에 대해선 진짜로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미 되돌릴 수는 없다.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식구가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다면 위로와 이 경우에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슬픔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슬픔 달래려는 사람들에게 색을 입혀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부모님들께서 느끼실 기쁨도, 슬픔도 전부 이해하는 것은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짐작으로나마도 뛸 듯 기쁘고,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 그들의 슬픔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응당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고 생각케 한다.

나도 그만큼 사랑 받고 자랐음에 감사한다. 우리 모두 그 아버님이 지으셨던 표정과 눈빛을 받으며 자랐다. 고맙습니다 부모님.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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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쨌거나 인간의 움직임은 지도 상에선 선이라는 것이다. 여행지의 면적을 모두 커버하고 싶지만 결국 하는 수 없이 동선을 정하고 선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부를 다 밟아보고 느끼고 싶었던 마음은 실현할 수 없는 욕심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어릴 때 생각하던 '적지는 않은' 나이에 이르러 드는 생각은 사는 것도 지도 위에서 내가 간 길을 표시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식이든, 경험이든 모두 면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의 경험과 인지는 선일 수밖에 없다. 모두를 다 경험하거나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과 인지의 한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본 우주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말이 와닿는다.

'인간은 우주를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만 더 알게 된다.'

​ 사는 것이 더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삶에 관한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가며 삶에 대한 전반적인 통찰을 완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이 세계가 참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에 대해서만 더 강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즉,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 것의 당위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겸손이라는 것은 어떠한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지금에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완성'이라는 헛된 목표를 향해 달리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겸손의 당위에 대해 생각하고 나니 이 글 또한 발칙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날들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하게 된다.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 ​완성은 없기에, 더 겸손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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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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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에 홀린 듯이 시간을 보냈다. 정신을 잠깐 차려 보니 벌써 5월이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같이 대회에 나갔던 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1년이 길게도, 짧게도 느껴졌다. 무어라 말하기 힘들게 회상만으로도 고단해졌다. 


 문득, 고딩 때 배운 시가 떠올랐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로 끝나는 시인데 지은이가 누구인지는 까먹었다. 맥락과 관계 없이, 다들 왜 사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내가 지금 왜 사는지를 떠올리기 위한 과정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악을 쓰고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하고픈 것을 하는 사람이야'라며 가득찬 자존감으로 사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생각을 하다가 보면 결국은 '그러니까, 왜'라는 결론에 부딪힌다.


 실제로 '그러니까, 왜'라는 질문으로 생각이 끝나지 않고 스스로 벅차던 시절도 있었다. 분명히 행복했다. 지금은 그 시절을 돌리려고만 한다. 지금도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하려든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것에 설레던 그 시절의 나를 계속 찾고자 억지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다 무너졌던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그 성장이 너무 쓰디 쓰다. 성장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깨져 버린 유릴 아무리 성능 좋은 접착제로 붙인다 한들 원래의 투명함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자꾸 빠져든다. 내 스스로도 그렇고 그 그리움의 끝에 대해서도 그렇다. 열심히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나는 역설적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싫고 밉다. 그걸 숨기고자 더 포장을 하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가끔은 남들 앞에서 떠든 날이면 집에 와서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서 진짜 나는 누구길래, 나는 뭐길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무얼해도 채워지지 않는 삶 속에서 더 채워지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나서는 더 불행하다고만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끝도 없는 비관과 자괴감 속에서 과연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발전의 당위는 무어길래 괴로워야만 하는가 말이다. 


 이렇게 비관적이고 허무해지는 밤이면 으레 술에 떡이 되어서 잠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절대 혼자서 말이다.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라는 이유를 굳이 떠올리고 그 행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게 본 이유라면 또 걱정이 된다. 지금 이 시간을 견디면 무엇이 달라지길래...? 달라지는 것이 있기나 할 것인지...


 스스로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분명 그 좋아하는 것 가운데에는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26살의 애어른은 너무 슬프다. 문방구 앞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얻지 못 해서 눈물을 보이던 4살짜리 꼬마와 다른 것이 무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일이 내 생각을 더 그렇게 가두는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굳이 생각을 돌려 생각하려는 자신도 가엾고 안쓰럽다.


 how pathetic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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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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