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미사를 다니는 중이다. 물론, 매일 가려던 다짐은 항상 눈을 뜨며 마주하는 7:20 이라는 시계를 보며 좌절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벽에 일어나 취업을 하게 해주십사 기도를 드리러 간사한 마음으로 가는 것 같아 새벽미사를 가면서도 죄스럽기도 하다. 요즈음 새벽미사에는 첫영성체 교리를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온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그 아이들을 위해 해주시니 나에게도 딱 눈높이에 맞는 말씀을 듣는 것 같다 좋다. 

 오늘의 강론을 아이들에게 하시는 걸 듣는데 무슨 질문을 하실 때마다 '아니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10살 정도의 녀석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지겨운 미사를 드리려니 뿔이 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고 보니 나의 주일학교 선생님 7년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주일학교 교사 생활의 첫 3년의 나는 미사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미워했다. '미사 시간에는 조용해야 한다'는 당위를 강요했고 그래도 안 될 때에는 나무라려 했다. 그리고 조용히 시키지 못하는 나를 스스로 무능하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시끄럽던 아이들도 고등학생만 되면 점잖게 미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는 애즉에 그 중학생들을 40분씩이나 내 원한대로 통제한다는 것이 허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 나이엔 무슨 말을 한들 그들에겐 이해되고 행동을 바꿀만한 논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몇년 전부터 나의 신념인 것처럼 굳어진 생각이 한 가지 있는데 '사람은 엄청난 크기의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정말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삶의 과정에서 모두 예전에 들었던 '미사시간엔 조용히 해야지' 같은 당위적 논리가 이해되거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던지게 만드는 경험을 하기 마련인 듯하다. 결대로, 흐르듯이 살게 두면 언젠가는 깨달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대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의 메시지를 구태여 머릿속에 입력하고 원래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시간을 굳이 건너뛸 시도를 할 필요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순간에 충실해야 깨달음의 기회도 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크게 느낀다. 그렇지만 선배의 충고를 '꼰대의 지적질'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젠 조금씩 알 것도 같다. 그 충고에 휘둘리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충고를 부정하는 것도 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업전선에 있으면서, 대학생활이 마치 술에 취했던 것처럼 정신 없는 상태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굳이 시절을 돌이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이젠 들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런 방황(?)들로 만들어진 사람이고, 과거를 돌린다는 것도 애즉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고민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잘못은 잘못으로 철저히 뉘우치면 된다. 앞으로는 잘못을 저지르고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들고서 나를 깎아내거나 미워하고 부정하는 일은 멈출 수 있을만큼은 큰 것 같다.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침 공기를 마시며 묘한 삶의 자신감을 얻었다. 항상 조심하되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물 흐르듯이 내 삶의 결대로.

마무리는 Dwight quotes는 아니지만 FALSE meme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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