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카테고리 없음 2015. 6. 9. 08:34

일요일의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밴드미사에 드럼 담당을 중1학생이 처음으로 맡았다. 성전 앞에서 연습을 하는데 그 학생과 꼭닮은 분이 오셔서 아이에게 윙크로 인사를 하셨고 아이는 스틱을 들어올림으로써 화답했다. 웃으시며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님의 눈빛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대견함과 사랑 그리고 걱정까지 말이다. 아버지의 눈빛에 담긴 세월을 혼자 앉아 추적해보았다.

아버님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을 결심하셨을 것이다. 다투기도, 헤어지기도 하며 사랑을 더 돈독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자라며 전적으로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했을 것이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며 조금씩이나마 성장함을 부모님께 보였을 것이다.

그랬던 아이가 사람들이 수 백 명 모인 미사에서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시니 당신 아이가 진짜 크고 있음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신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 표정은 조그만 핏덩이에서 하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모두 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을 것이다.

그 기쁨의 크기만큼을 반대로 돌려 보니 너무나도 섬뜩했다. 그리고는 생각이 저절로 작년 봄으로 향했다. 팽목항에는 드럼치는 학생의 아버님의 기쁨을 겪으며 살아 오신 분이 수백분이었을 것이다. 그 기쁨을 준 존재가 죽어감을, 눈 앞에서 내 힘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보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큰 슬픔일까.

그 분들께서 느끼셨을 무력함과 비참함에 대해선 진짜로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미 되돌릴 수는 없다.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식구가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다면 위로와 이 경우에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슬픔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슬픔 달래려는 사람들에게 색을 입혀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부모님들께서 느끼실 기쁨도, 슬픔도 전부 이해하는 것은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짐작으로나마도 뛸 듯 기쁘고,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 그들의 슬픔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응당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고 생각케 한다.

나도 그만큼 사랑 받고 자랐음에 감사한다. 우리 모두 그 아버님이 지으셨던 표정과 눈빛을 받으며 자랐다. 고맙습니다 부모님.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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