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들은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인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흔치 않은 일들은 대부분 태어나 처음 하는 일 들이 많다. 요 근래에 들어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본 것 같다. 좋은 지 나쁜 지는 판단하지 않겠다.



 정말 솔직히 고백하건대는 오만했다. 돌이켜 볼 때에 그 보다 오만할 수 없다. 스스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스물 다섯에 말이다. 그리고선 그 이유 없는 판단에 확신을 엄청나게 실었다. 그래서인가 그 때 했던 판단은 기쁘고 설레기만 했다. 특히나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일일 수록 더 그랬다. 완성된 내가 온전히 마음을 쏟는 일이라면 평생을 두고서라도 옳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구가 그랬고 어느 한 사람이 그랬다. 그 판단이 틀렸는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그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얼토당토 않게 내가 확신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확신 말이다. (지금에도 절대 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당시 나를 원망할 뿐이다. 조금 더 차분했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내가 온전하다고 믿어 버린 순간부터 내가 느낀 감정은 강한 만큼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온전한 내가 그렇게까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놓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았기에 더 그러했다. 그 때에 느낀 감정이 모두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 때 느낀 감정의 크기는 살면서 가장 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거기에 매몰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줍잖게 당시에 스스로를 믿었던 만큼 말이다. 그래서 빠져 나올 수 없이 그 감정에 흠뻑 젖었다. 감정이 과장되었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무튼, 그래서 그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었노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후회가 되는 것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오만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만큼 그에게 내 멋대로 행동했다. 그 누구에게 보다도 더 멋대로였다. 잘못된 자의식 때문에, 내가 고작 스물 다섯에 완성되었다는 되지도 않는 자의식 때문에 가진 확신이 모든 걸 그르쳤다. 이성의 제약 없이 모든 감정을 다 배설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긴 존재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이제 와서 변명하기도 부끄럽다. '스스로 완성되었다'고 느꼈던 그 당시의 나의 애티튜드는 딱 그 정도였다. 이제 와서 보기엔 그저 덜 떨어진 미저리였을 뿐이다. 병신.



잃고, 아니 내가 스스로 멀어지게 하고서 많이 울었다. 겨우내 매일 생각하며 슬퍼하고 종종 울었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둘째고 그만큼의 생각이 드는 사람을 놓쳤다는 생각에 슬픔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성장의 기회리라 자위하며 버텨 왔다. 지금의 생각에도 그건 자위다. 많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무언가 내 생각을 정리하겠노라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홀로 생각하니 안쓰럽다. 근데 다른 면으로 보기에 많이 컸다 싶기도 하다.



앞으로 스스로를 보기에 잘못 되었다 싶은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하며 이 글을 마친다. 근래에 깨달은 것은 절대로 죽기 전까지 완성되는 자아라는 것은 없으며 절대로 후회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확실한 결단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기분은 아마 살면서 더 느껴보지 못 할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 보다 더 큰 것을 희망으로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만큼의 감정을 주는 사람을 만나 보았단 사실은 내게 좋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솔직하게, 당위 보다는 내 좋은 일을 좇으며 살으려 하기에 그 감정이 더 아쉽고 그립다. 그 사람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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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의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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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카테고리 없음 2015. 6. 9. 08:34

일요일의 일이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밴드미사에 드럼 담당을 중1학생이 처음으로 맡았다. 성전 앞에서 연습을 하는데 그 학생과 꼭닮은 분이 오셔서 아이에게 윙크로 인사를 하셨고 아이는 스틱을 들어올림으로써 화답했다. 웃으시며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님의 눈빛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대견함과 사랑 그리고 걱정까지 말이다. 아버지의 눈빛에 담긴 세월을 혼자 앉아 추적해보았다.

아버님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을 결심하셨을 것이다. 다투기도, 헤어지기도 하며 사랑을 더 돈독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자라며 전적으로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했을 것이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며 조금씩이나마 성장함을 부모님께 보였을 것이다.

그랬던 아이가 사람들이 수 백 명 모인 미사에서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시니 당신 아이가 진짜 크고 있음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신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 표정은 조그만 핏덩이에서 하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모두 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을 것이다.

그 기쁨의 크기만큼을 반대로 돌려 보니 너무나도 섬뜩했다. 그리고는 생각이 저절로 작년 봄으로 향했다. 팽목항에는 드럼치는 학생의 아버님의 기쁨을 겪으며 살아 오신 분이 수백분이었을 것이다. 그 기쁨을 준 존재가 죽어감을, 눈 앞에서 내 힘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보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큰 슬픔일까.

그 분들께서 느끼셨을 무력함과 비참함에 대해선 진짜로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미 되돌릴 수는 없다.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식구가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다면 위로와 이 경우에는 지지를 보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슬픔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슬픔 달래려는 사람들에게 색을 입혀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부모님들께서 느끼실 기쁨도, 슬픔도 전부 이해하는 것은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짐작으로나마도 뛸 듯 기쁘고, 내 가슴이 다 미어진다. 그들의 슬픔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응당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고 생각케 한다.

나도 그만큼 사랑 받고 자랐음에 감사한다. 우리 모두 그 아버님이 지으셨던 표정과 눈빛을 받으며 자랐다. 고맙습니다 부모님.

김수환 추기경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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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쨌거나 인간의 움직임은 지도 상에선 선이라는 것이다. 여행지의 면적을 모두 커버하고 싶지만 결국 하는 수 없이 동선을 정하고 선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부를 다 밟아보고 느끼고 싶었던 마음은 실현할 수 없는 욕심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어릴 때 생각하던 '적지는 않은' 나이에 이르러 드는 생각은 사는 것도 지도 위에서 내가 간 길을 표시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식이든, 경험이든 모두 면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의 경험과 인지는 선일 수밖에 없다. 모두를 다 경험하거나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과 인지의 한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본 우주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말이 와닿는다.

'인간은 우주를 알면 알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만 더 알게 된다.'

​ 사는 것이 더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삶에 관한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가며 삶에 대한 전반적인 통찰을 완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이 세계가 참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에 대해서만 더 강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즉, 내가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 것의 당위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겸손이라는 것은 어떠한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지금에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완성'이라는 헛된 목표를 향해 달리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겸손의 당위에 대해 생각하고 나니 이 글 또한 발칙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날들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하게 된다.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 ​완성은 없기에, 더 겸손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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