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홀린 듯이 시간을 보냈다. 정신을 잠깐 차려 보니 벌써 5월이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같이 대회에 나갔던 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1년이 길게도, 짧게도 느껴졌다. 무어라 말하기 힘들게 회상만으로도 고단해졌다. 


 문득, 고딩 때 배운 시가 떠올랐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로 끝나는 시인데 지은이가 누구인지는 까먹었다. 맥락과 관계 없이, 다들 왜 사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내가 지금 왜 사는지를 떠올리기 위한 과정으로 떠올린 것이었다. 악을 쓰고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하고픈 것을 하는 사람이야'라며 가득찬 자존감으로 사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런데 후자의 생각을 하다가 보면 결국은 '그러니까, 왜'라는 결론에 부딪힌다.


 실제로 '그러니까, 왜'라는 질문으로 생각이 끝나지 않고 스스로 벅차던 시절도 있었다. 분명히 행복했다. 지금은 그 시절을 돌리려고만 한다. 지금도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하려든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것에 설레던 그 시절의 나를 계속 찾고자 억지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다 무너졌던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그 성장이 너무 쓰디 쓰다. 성장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깨져 버린 유릴 아무리 성능 좋은 접착제로 붙인다 한들 원래의 투명함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자꾸 빠져든다. 내 스스로도 그렇고 그 그리움의 끝에 대해서도 그렇다. 열심히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나는 역설적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싫고 밉다. 그걸 숨기고자 더 포장을 하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가끔은 남들 앞에서 떠든 날이면 집에 와서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서 진짜 나는 누구길래, 나는 뭐길래,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무얼해도 채워지지 않는 삶 속에서 더 채워지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나서는 더 불행하다고만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끝도 없는 비관과 자괴감 속에서 과연 발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발전의 당위는 무어길래 괴로워야만 하는가 말이다. 


 이렇게 비관적이고 허무해지는 밤이면 으레 술에 떡이 되어서 잠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절대 혼자서 말이다.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라는 이유를 굳이 떠올리고 그 행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게 본 이유라면 또 걱정이 된다. 지금 이 시간을 견디면 무엇이 달라지길래...? 달라지는 것이 있기나 할 것인지...


 스스로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분명 그 좋아하는 것 가운데에는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26살의 애어른은 너무 슬프다. 문방구 앞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얻지 못 해서 눈물을 보이던 4살짜리 꼬마와 다른 것이 무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일이 내 생각을 더 그렇게 가두는 일일까 싶기도 하지만 굳이 생각을 돌려 생각하려는 자신도 가엾고 안쓰럽다.


 how pathetic am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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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쉰다는 것을 문득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엔 숨쉬는 것이 돌연 의식적인 행동이 되어버린다. 사실 숨쉬기는 모든 의식적인 행위 아래에 전제처럼 깔려 있다.

무언가 그런 기분이 든다. 기뻐도 내 숨쉬기 같은 마음은 기쁘질 않고 즐거워도 내심 슬프다. 말 그대로 속마음이 그렇다. 즐거움이라는 의식할 수 있는 감정 상태 아래에 슬픔이라는 숨쉬기 같은 감정이 깔린다. 슬픔이 의식할 수 있는 감정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근데 그 때 보다도 지금이 더 괴로운 것은 그렇게 그립기 때문인 듯 하다. 아니 그렇기 때문임이 확실하다.

슬픔이 입김이 되던 그 새벽에 그 집을 나서면서 혼잣말로 "잘했다"라고 그렁이며 말하던 나는 어디에 갔는지. 돌릴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면서도, 결국인 인간인지라 그 마음에 그리움의 손짓을 나도 모르게 보낸다. 다시 그렇게 벅찰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어른이 말하던 '인생의 쓴 맛'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 찌질한 일기다. 찌질함에 대한 창피를 상쇄하는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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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 하리라 여긴 시간의 기쁨을
혼자의 서러움으로 잦아들게 만드는 밤이면
그냥 그런 마음만으로도 괴로워져서

잠들 여유도 없이 깨어서는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요.

손을 내밀어 주셨으면 하고 바랐던 내 모든 마음이
그 시절이 전부 헛된 것이었노라고 나에게 소리치는 것처럼
비참하고 서글픈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나 그런 때에 또 물러서 스스로를 다잡으며 되뇌이지만
그래도 한 번 흐른 물길을 돌리는 데에는
영겁의 세월이 필요한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흘러감으로 견뎌내면 되는 것이라 믿고
이 새벽을 깨어 보렵니다.

'실패'-이지수​ 

, 2010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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